夏至雜談 – 평화의소녀상 (위안부소녀상)

내가  위안부 소녀상을 처음 본 것은.  - 지금은 위안부 소녀상이 아니라 평화의 소녀상으로 불린다.

장영철, 전숙희 부부 건축가가 함께 운영하는 와이즈아키텍츠 설계의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완공된 직후.

디자인과 이슈팀들과 함께 방문했던 때 였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처음 본 그 순간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단단한 느낌의 그 소녀상은 그 형태 자체로 강인한 무언가가 있었다.​​

일본과의 외교마찰을 빚을 정도의 힘을 가진 조각상이 분명하다.

물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의 잘 설계 된 공간이 주는 가슴 아린 공간감도 한 몫 단단히 했다.

 

백자갈이 깔려있는 진입로를 따라 걸으면,

내 발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군화발소리와 함께 들려오는데,

그 발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명하다.

 

내부로 들어가 이곳 저곳을 살펴보며 당시의 잔인했던 인권유린 사태를 짐작할 만한 전시품들을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뭔가 분노와 연민이 함께 점철 된 그 공간은.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서 역사의 밝고 어두운 단면들을 조망할 수 있게 조직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로비를 지나 투박한 계단실을 따라 2층에 오르면 그녀가 앉아 있다.​

쌍꺼풀 없는 고요한 눈매로 주시하는 곧은 시선,

꼭 다문 입술,

앙 쥔 주먹,

결연한 그 앉음새.

평화의소녀상

 

 

 

기가 눌린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소녀상은 소녀상 자체로 ‘서늘한 숭고미’가 있다.

 

별별 희안한 이유로 소녀상을 철거하네 마네 하며,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시도들이,

외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어지는 요즘은.

외교적 군사적 역량이 약했던 한 때 우리의 자화상일 뿐이다.

 

아픈 과거는 지워낸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며,

즐겁고 훌륭히 기념할만한 것들만이 역사에 남는다해서 민족성이 우월해지는 것도 아니다.

 

슬픔과 죽음, 희생이 결여 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세계 어느 곳에 있겠는가.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역사를 잊지 않는 추모가 희생에 대한 숭고한 되새김일 것이다.

 

자신이 숭고하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 별로 없는 21세기 바쁜 현대사회의 일원이라는 판단이 서거든 한 번쯤 들러서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의미있는 휴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첫 여성 외교부장관 선임을 기념하며

하루 이른 하지잡담.

 

끝.

 

 

 

P.S : 앞으로 외부에 설치되는 소녀상에 목도리를 두르거나 마스크, 털모자, 그런 것을 두르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비가와도 우산을 받치거나 우의를 입히지 않아주기도 바란다. 왜 그렇게 하는지 그 마음이야 어찌 모르겠는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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