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혼돈(Caos Calmo) – 그윽한 자아침잠의 일상 / 2009

조용한 혼돈
감독 안토니오 루이지 그리말디
출연 난니 모레티,발레리아 골리노
개봉 2009.08.27 이탈리아,영국, 111분

엉덩이가 들썩이는 걸 왜그런지 몰라 허둥댔다.
걸 그룹의 홍수 속 2NE1에 빠져서 히히덕 대다가 문득 자아로 부터 탈주 된 이상 기류를 느끼고 책을 읽을까 하다가 영화 한편 봤다.
근래들어 자극적인 매체들과 음식들에 너무 빠져있었나보다.
오랜만에 조용히 영화를 보기로 한다.

놀랄노자로소이다.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고갈 되기 직전이었나 보다.
영화 시작 스텝소개 자막과 함께 흐르는 낮은 BG에 진땀이 날 지경이다.
이 영화 끝까지 봐야지 맘을 다잡는다.

피에트로 파라디니(난니 모레티)는 해변에서 동생과 라켓볼을 치던 중 바다에 빠져 생사를 오가는 여인 두명을 동생과 함께 구하게 된다.
감사의 말도 없는 두 여인의 일행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두 여인을 구하던 시각, 아내가 황망한 죽음을 맞이 한다.
뭣 때문인지 시종 불안한 느낌은 거기서부터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불안하고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을 지속시켜준다.

회사의 중역으로 중년을 보내던 그의 일상은 아내의 죽음과 함께 달라지기 시작한다.
회사 매각이냐 합병이냐에 따른 중역회의에 들어가서도 좀체 집중하지 못한다.
이제 그는 딸아이의 머리도 묶어줘야하고, 책도 읽어줘야하고, 등교도 시켜줘야 한다.
엄마의 죽음 후 딸아이의 첫 등교 날에 피에트로는 아이에게 학교 앞에서 꼼짝않고 기다리겠다 약속한다.

이날 부터 피에트로의 학교 앞 생활이 시작 된다.
다운증후군의 아이를 어디론가 매일 데려다 주는 엄마.
샌드위치 가게 아저씨.
매일 그 길로 개를 데리고 산책 나가는 아름다운 아가씨.
피에트로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학교 앞 공간을 사유한다.

피에트로는 공원 벤치에서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일 시간을 사유한다.
딸아이가 걱정도 되고, 회사일도 손에 안잡히고, 그저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며, 이런저런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균열난 상처를 가진 건 피에트로지만 사람들은 피에트로에게 자신들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들어주고 이야기 나누며 조용하게 아물어가는 피에트로의 내면의 상처.

영화 조용한 혼돈은 너무나도 황망한 아내의 죽음으로 인한 내면의 깊은 상처를 씻어낼 때
그 상처는 다른 사유나 사건으로, 혹은 인과적 관계 맺음으로 치유하지 않는다.
강렬한 눈물도, 격한 감정의 호소도, 일련의 파탄과 갱생적 치유도 없다.
다만 침묵으로 소소한 일상을 살아내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대단히 묵직한 느낌을 받는다.

피에트로는 벤치에 앉아 아이의 학교앞을 지키는 팔라딘(벤치의기사)이 되었다.
여름 휴가의 끝자락에서 시작 된 피에트로의 혼돈과 고요의 시간은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든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창밖에 내리는 눈.
딸아이와 크리스마스까지 눈이 내리길 바라며 딸아이에게 선물은 뭘로 줄까 묻는다.

그 아침 아이를 학교에 보내주다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소란하고 너그러운장면이다.
개를 데리고 늘 산책하던 여인이 개 줄을 놓쳤던 모양이다.
첫 눈과 함께 개가 뛰기 시작하고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아이들도 뛰기 시작한다.
고요하고 낙엽 그득히 쓸쓸했던 그 사유의 공간은 개를 잡으려는 아이들과 함께 밝고 희망찬 공간으로 순식간에 변모한다.

아….이제 뭔가 좀 내려놓아도 되지 않을까…
영화 보는 내내 너무 힘겹고 외로웠다.

딸아이를 배웅하고 다시 벤치로 가려는데 아이가 학교 앞에 나와 있다.

– 왜 나와있니?
– 생각해봤어.
– 뭘?
– 크리스마스 선물. 아무리 좋은일도 두 번은 안 일어나. 되돌릴 수 없으니까 아빠가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없자나?
– 그래.
– 아빠가 이젠 사무실로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먼저 말 할 줄 알았어. 그 말을 안해서 기뻤어.
– 그랬구나.
– 근데 그게…친구들이 놀리기 시작했어. 애들이 원래 짖궂자나…
– 선생님들은 뭐라 안하셔?
– 선생님들은 애들이 놀리는 거 몰라. 창문에 나와서 아빠한테 손 흔들면 애들이 막 웃었어.
– 누구누구가 놀렸니?
– 베아트리체 등등 다 놀렸어. 아빠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은…
– 알았다….말 안해도.
– 화났어?
– 아니. 언제까지나 여기 있을 수는 없지. 잘 말 해준거야.
– 괜히 말했나봐…
– 아냐. 잘 해줬어. 늘 할 말은 해야하는 거야. 차오(안녕).

선물은 피에트로가 받았다.
긴 침묵의 계절을 뚫고 딸아이도 교실에서 그와 같은 일을 겪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 같다.
하나의 계절이 지나면 새로운 계절이 오는 것이다.
잊고 다시 시작해야 되는 것이다.

영화는 회사 중역간의 비밀스런 분쟁과 아내의 여동생과의 과거사도 들춰지며 소소한 사건들과 이어진 배경들 그리고 작은 이야깃 거리들을 곳곳에 심어두었다.
회사의 합병과 관련 된 회사 대표와의 격렬한 정사.
그녀가 그의 구원을 받았으며 그녀가 그와 잠자리를 함께 한다는 설정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녀를 정부로 둔 기업가 슈타이너 역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까메오는 좀 놀라웠다.
차 안에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뭐였을까.
궁금하다.

조용한 혼돈과 관련 된 내용을 찾아 읽어 봤는데,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의 글은 짧고 매섭게 본질을 이야기 해 준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765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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