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 건 못나 건 과거는 나의 것.

2011년 9월 14일.
어제 인천에 다녀왔다.
연주회도 볼 예정이어서 일찍 서둘러 도착했던 중구청 근처.
1991년 봄 부터 1992년 가을 무렵까지 내 스무 살을 보냈던 곳.
대학에 떨어지고 공부라는 것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내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림을 그린답시고 아뜰리에를 빌려 작품 활동 하던 소연이 누나, 강석이, 석인이와 함께 좁은 아뜰리에에서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덕지덕지 발랐더랬다.

그 때 중구청 주변은 시인과 화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군락을 이룬 곳 이었다.
아뜰리에를 나와 조금 걸으면 막걸리 집이 있고 대 낮부터 ‘예술 씨발’을 외치던 화가와 시인들의 잡담들이 이어지던 아담한 동네였다.
지금은 차이나타운과 함께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듯 하여 당최 내가 묵었던 아뜰리에가 어딘지 찾기가 쉽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그 건물을 찾았는데…
그럴 줄 몰랐는데.
눈물이 왈칵 났다.

20년.
그렇게 흘러 주었다.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고
저녁에 신문을 돌려(그 당시 동아일보는 석간신문이었다.) 공부는 못하지만 언젠가는 갈 대학입학금과 먹고 지낼 돈을 마련했다.
간간히 강석이와 석인이가 ‘노가다’를 뛰고 오는 날은 회식이다.
맨날 새우깡에(진짜 새우깡만)소주만 먹다가 버드와이저 각 2병에 멸치를 고추장 찍어 먹고 남은 돈으로 물감이랑 캔버스 사다 둔다.
강석이와 석인이는 이미 대학을 포기, 저주 했고.
나와 소연이 누나는 열심히 그림을 그려 내다 팔았다.
그 돈으로 소주 사먹기도 사실 버거웠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하루하루가 청춘의 멋진 날들이었지만,
그 때는 캄캄한 미래를 술로 달래던 시절이었다.
동네를 굽이굽이 돌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는데 저쪽 골목 어귀로 한 손에 버드와이저 한병과 한 손엔 하얀캔버스 들고 돌아 들어가는
스무살의 내가 보인다.

아내가 바보처럼 벌게진 내 눈을 못 본 게 다행이다.
아내가 없었으면 황소처럼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몇몇 건물들은 그대로 이지만 몇몇 건물은 관광 명소답게 외장을 화사하게 칠했다.
작고 아담한 스케일의 동네.
인천행을 기대하실 선생님과 몇몇 페북 친구분을 모시고 한 번 더 와야겠다.
소연이누나는 그 때 이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고 독특한 예술의 세계를 여는 신진 작가로 소개되며 작년 강남 청담동에서 개인전을 열며 금의환향했다.
강석이는 아버님의 가업을 물려 받아 금속을 어루만지는 장인의 포스를 가졌다.
내가 가끔 금속과 가공 방법에 대해 전화로 묻곤 한다.
석인이는 그 때 이후로 명함을 디자인 하는 작은 회사를 만들었다가 망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만날 수는 있는데 뭐하는지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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