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크롤러 – The Sky Crawlers

스카이크롤러 포스터

감독 : 오시이 마모루

제작 : 2008년 일본

기승전결을 바라는 관객이라면 지겹고도 지겨운 시간을 선사해 주는 애니메이션일 듯 하다.
거장이라 불리기에 한 번 볼까? 하는 심정으로 보기에는 참 난처하고 어이없는 애니메이션이 아닌가?
흔히 만화라 불리는 ‘저급한’ 주제에 날 이토록 지겹게 하다니…

스카이크롤러(이하 애니)는 줄거리가 없다.
줄거리를 굳이 써준 네이버의 글을 참조 바란다.(아래)

==애니메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의 신작.
기억상실증에 걸린 전투기 에이스 파일럿 칸나미 유이치는 베이스 사령관인 쿠사나기 스이토와 가까워지게 된다. 두 사람 다 킬드렌으로 공중에서 죽기 전까지 사춘기 시절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전투기 파일럿들이다. 그러는 와중에 수상쩍은 적군 파일럿이 그들을 가로막으며 위협한다.
유이치는 기억을 되찾고 최후의 사랑을 얻게 될 것인가?==

이 줄거리 누가 썼을까?
참 대단하다….이 애니를 다 보고 난 후에 이리저리 찾아봤는데 이렇게 간단한 줄거리일 줄은 몰랐다.
비웃는 것이 아니고 진짜로 이걸 본 사람이 이렇게 썼다면 그 사람 참 대단하다.
그저 이 애니를 본 내 편향적 이야기를 나 또한 하려는 것이므로 그 사람의 시각이 자못 궁금하다.

이 애니는 기대속에 부산 국제영화제에 개봉됐다.
반응들은 완벽히 엇갈렸다.
보는 내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나에게 스카이크롤러의 전투씬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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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음모론은 여전히 날카로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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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바람은 애니 속에서 내내 아름다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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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배치된 그 자신(감독)의 오마쥬는 매니아들에게 헌신적이기 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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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없다. 키르도레라는 종과 쿠사나기, 티쳐 캐릭터의 단편적이면서 편향적인 내 시선을 적고 싶다.

키르도레.
분명 키르도레는 15살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모리 히로시의 동명소설을 옮겼겠지만 그건 그것이다.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책 겉면에 이렇게 쓰여져 있다.

– 15세 소년은 아이의 종점이며 어른의 시발점인 인간의 순수 원형-몸은 어른, 마음은 아이인 채로 인생의 허무와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뜨며,사랑과 성에 열병을 앓으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방황하는 위험한 계절 –

15세가 가지는 정체성의 혼란은 자신을 둘러싼 시간의 흐름과 몇몇 단편적이거나 충격적 사건들로 인해 성숙함을 갖춰가게 된다는 성장 소설을 독특한 사건 전개와 문체로 엮어 냈었다.
그러나 이 애니 속의 키르도레는 성숙할 수 없다.
성숙할 수 없는 사춘기라는 말만으로도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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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만들어진 ‘에어파이터’ 들이다.
기억도 추억도 없는 인간의 형태를 한 어린 병기다.
그들은 기업의 게임속에서 전투를 한다.
상황판만으로 즐길 수 있는 미래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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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렇게 무시무시한것을 보며 전율하고 싶은게 인간인 것일까?
스포츠 중계처럼, 게임처럼 바라보며…. 그러나 패자는 진짜로 죽어나간다는 것을 아는것이 더욱더 흥분되는 자극제로서 미래에 전개 될까?
요즘 격투기(개인적으로 진짜 격투기 좋아한다.)를 보면 단편적으로나마 알게된다.
상대방이 피흘리며 아파하거나 그로기 상태로 중심을 잃어 비틀거릴때 우린 슬프지 않은 것이다.
그건 게임이니까.
정말 그럴까?
그냥 게임일까?
이 애니를 본 후의 나에겐 그것이 키르도레의 전주가 아닌가 싶은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니까.

이처럼 키르도레는 기업에겐 부를 가져다주고-어떻게 가져다 주는지는 애니에 않나온다. 그저 아는것이다. 풋볼 결승전이 얼마를 벌지는 다들 알잖은가?-
관객 혹은 시청자 들에게 흥분을 안겨주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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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속에서 관객(제작자 혹은 그 관련 가족들)들이 직접 비행장을 참관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들의 쑥덕임은 천연덕 스럽기까지 하다.
아는데 그냥 모르는거.
내가 돈을 내고 그것에 따른 보상적 흥분만 주어진다면 연민은 없다는 것인가.

쿠사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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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의 배경만으로 보자면 <블레이드 러너>에서 부모의 기억을 가지지 못한 레플리컨트와 같다.

그러나 오시이 마모루가 보여주는 쿠사나기는 우두머리의 면모를 갖췄다.
공각기동대에서도 자기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알고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의 절박함은 인지 하고 있다.
다른 캐릭터들도 다들 같은 상황이지만 쿠사나기만은 인식을 넘어 인지상태로 있다.

다들 똑같은 환경속에 태어나게 되면 같아야 하는데 어떤 한 개체만 다른 것이다.
영화 아일랜드의 링컨-6-에코 처럼.
영화 메트릭스에는 그런 사람이 꽤 많은 것으로 나오니까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다.
오류가 진실이 되는 그런 관점은 언제봐도 경악 스럽다.
의문이 생긴다.
시스템은 자신들의 복사 개체오류인 쿠사나기를 어째서 그냥 두다 못해 지휘권까지 주었는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그저 감독이 극의 진행을 위한 매개체로써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말게 된다.
안그러면 내가 보는 재미 없으니까.

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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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테른의 파일럿 ‘티처’는 어른이다.
어른…어린이에게 어른은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들만의 잣대로 어린이를 대신해 잘 잘못을 가려내 주고 행동을 제약하거나 방목적으로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있다.
어린이의 어린이다운 정체성으로만 판단하게 되면 관리자의 개념을 넘어선 신격화 까지도 가능해진다.
자기정체성이 뚜렷한 어린이가 아닌 바에야 시키는 대로 하는것이 맞다고 알 뿐이다.
영화 “거미”에서 알몸에 넥타이를 멘체 여자를 범하고 사과를 게걸스레 씹으며 전진을 외치던 어른을 숨어서 바라보며 원초경을 경험하는 어린이적 어른의 심정.
스카이 크롤러를 보며 시종일관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아픈것은 어른 때문이다.
그 어른은 이 영화에서 하나의 존재화에 근거할 뿐 이미지를 주진 않는다.
통제자의 모습을 볼 수도 없기 때문에 더욱 시스템은 견고해지며 억압적이고 무시무시한 것이 된다.
소통할 수 없는 어른은 어린이에게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무얼 말하고자 했을까 아로새기려 애쓰면서 이 애니를 감상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와는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애니로 승화했나보다 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 된다.

우린 가끔 지겨움을 참고 인내할때 더 깊숙한 내면으로 침잠되는걸 느끼곤 하잖은가?

책을 읽다보면 서서히 빠져드는 그 느낌.

내 주변이 책속의 상황과 일치되는 그 느낌.

그런 것 중에 하나라고 치부하기엔 공감대 형성에 어려움을 느끼게 해주는 애니지만 나에게는 늘 가져왔던 내 생각들을 이렇게 이미지로 전달하려 애쓴 감독이 고맙다.

나도 그런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깊은 내면을 날카롭고 냉정하게 바로 볼 수 있는 그런 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게 하는 애니다.

2009년 3월 15일 – 자아침잠 블로그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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